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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로그

영구임대저택
by 백작


이글루스를 접는다.

이글루스로 다시 복귀했던 이유는 예전의 추억 때문이다. 추억을 극복하고 싶었기 때문인데, 진정한 극복은 결국 떠나는 것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이글루스는 추억이 아니라면 굳이 운영해야 할 메리트가 그리 큰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도는 신경외과

때려칠 용기가 없어 계속 의사 놀이 중인 인턴 생활 만 8개월 째임.

요즘 우리 병원 신경외과에 방송작가분이 한 분 참여하셔서 회진도 돌고 수술방에도 들어오고 가끔 미천한 인턴에게 말도 걸어주신다.

그 분의 입장에서 상황들을 살펴보면,

씬1.
점심시간에 피자를 3개 시킨 신경외과 의국. 1년차가 느즈막히 의국으로 들어와 2년차에게 이것저것 노티를 하며 다른 과에 전화를 걸면서 눈치껏 피자 한 조각을 물어든다. 그 때 2년차가 하는 말, "야 뿅뿅환자 패솔로지 좀 알아와." 그 말에 1년차는 네 알겠습니다 - 와 함께 쌩 돌아서 나감. 의국에 들어온지 1분만에 상황 종료.

등등.

스퀴징 하러 가야 한다. 우리 이쁜 뿅뿅이를 위해서.

오늘 NCU 환자에게 간호사님이 밥을 떠서 먹이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요즘 왜 이리 감성적인지

난 역시 신경외과는 r/o.


마 페밀리


나는 왜 정신과 의사가 되려 하는가

우리 병원 정신과 1년차 모집 공고에 A4 용지 3매의 자소서를 첨부하라고 하길래, 갑작 지원의 욕구가 물씬 일어났다. 아직 우리 병원을 지원할지 안할지 - 지원하겠다고 막강 경쟁자에게 선언은 해두었으나 아직 미정 - 결정도 안한 상태이지만 마음 속에선 이미 작문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작정하고 쓰는 글발에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기에 정말 자소서가 소용이 있는 것이라면 왠지 우리 병원도 끌린다. 여기에 전공의 시험을 대박치면 양자역학적 확률 이상의 승산이라도 있지 않을까?

나는 왜 정신과를 지원하고자 하는가?

글쎄,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원 동기의 역사에 대해 쓰라고 한다면 초기 발단은 대충 이러하다. 인간 정신, 또는 뇌와 관련된 분야를 전공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해왔고 그 분야 중 유독 정신과가 끌렸다는 것 정도. 신경외과는 너무 빡세고, 신경과는 막상 PK를 돌아보니 신경내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정신과 역시 결국 약물을 중점으로 한다는 점에서 정신내과에 가까워지고 있으나, 이 점은 오히려 너무 인문학스러운 정신과를 radical한 과학주의자의 구미를 당기는 촉매 역할을 하였다. 그렇다, 결국 나는 정신을 자지우지하는 약물에 끌린 것 같다.

내가 정신과를 한다면야, 알콜중독이라든지 우울증이라든지, 내가 개인사에 입각하여 관심가지게 된 질병을 연구한다든지, 치료법의 창조적 혁신에 이바지 하고 싶다든지 하는 드립을 얼마든지 칠 수야 있겠지만, 이것들은 사실 정신과 지원의 동기는 아니다. 단지, 나는 이러저러한 역량을 가지고 있고 열정도 있으니 그쪽에서 날 뽑아주시면 꽤 쓸만할 것 - 이라는 어필용이라면 모를까. 동기란, 말 그대로 내 운명의 벡터를 확 바꿔버린 방아쇠를 말하는 것이다. 그게 도대체 나의 경우에는 무엇이었을까? 강렬하진 않아도 분명 의지의 판도를 바꾼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알음알음 알던 사회과학도들의 학문이 멋있어 보였고 그들이 인용하는 사상가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전공 그 이상의 것도 해보고 싶었다. 교양으로 아는 것과 정말 아는 것은 확실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위대한 지성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다.

동시에, 나의 재능은 지식의 축적보다는 창조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글을 쓰고 싶고, 그것도 훌륭한 글을 쓰고 싶다. 사람들을 위로한답시고 얕은 수를 쓰는 멜랑꼴리한 정신의학서를 쓰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알아들을 수도 없는 컴퓨터 연산자같은 정신분석학책을 쓴다거나 번역하면서 생애를 보내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나는 기념비적인 책을 쓰고 싶다. must read item이 되고 싶은 것이다.

생각해보았다.

다른 삶은 어떠할까?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누군가의 말에 나는 생전 없던 tension pneumothorax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젠장스럽지만, 그들의 말이 맞다. 나는 뼈저리게 후회할 것이다. 아니, 후회로 점철될 미래를 겪어보기도 전에 이미 후회의 기분을 알 정도라면, 정말 그 길은 가서는 안되는 것이다.

퀴블러 로스의 책을 다시 펼쳐들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구절이 맞는지 기어이 다시 찾아서 읽고 싶었다. 정말로 그녀는 alternative의 삶도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했던가? 아니다. 다시 읽어보니, 그녀의 말은 선택할 수 없는 순간이 왔을 때 순응하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아직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내가 왜 미리 순응을 택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무런 제약도 없이, 나에게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정신과를 선택할 게 뻔하면서, 나는 왜 이러저러한 타인과 사회의 가치, 그리고 내 스스로 나를 괴롭히려 만들어낸 자질론에 휘둘려 쓸데없는 방황을 했던걸까. 그만큼 나의 core는 아직 많이 약하다. 그래도 파스칼의 갈대처럼 아직 통밥은 굴러가고 있다. 나는 결국 제대로 된 길을 따라 하늘거릴 생각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과정은 늘 숭고하고 즐겁고 감사한 것이다.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행복 전도사의 자살

붓다가 말하길, 인생은 고(苦)라. 삶은 원래 힘든 것이라고 기대치를 스님만큼 낮출 때 인간은 비로소 일상의 행복을 즐길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죽음을 두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설명을 많이 읽어보았다. 행복 전도사라는 굴레 때문에 정작 본인은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을 것이며 동반자살한 그의 남편은 괴로워하는 아내를 보살피다 같이 우울증에 전염되었을 수 있다는 것 등이다. 사실 행복 전도사가 된 것부터 그녀가 끊임없이 행복을 강박적으로 사고해야 할만큼 인생이 괴로웠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경우가 예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울증 치료로 명성이 높았던 한 정신과 의사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야기라든가. 다들 자신에게 그런 소인이 있기 때문에 치료자의 길을 택한 것일수도 있고, 계속 비슷한 사람들을 치료하다보니 자살의 가능성에 너무 쉽게 노출되어 선택 가능성이 커지는 것일수도 있겠다.

나의 경우, 명확한 끝이 보이는 인턴 생활을 아주 짧게 겪으면서도 상당히 괴로웠던 순간이 분명 있었다. 그런 때에는 망상이 심해지기 때문에 앞날이 참으로 캄캄해보인다. 내 인생은 비극적 작품성도 없는 실패한 극본같이 순식간에 시시하게 느껴지고 한 손에 말아쥐어 폐기처분해버리고 싶어진다. 나는 그녀에게 어리석은 방법을 택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왈칵 눈물까지 쏟아지진 않아도 그 심정을 좀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어리석은 선택인 줄 알면서도 그것만이 오로지 눈에 보이는 탈출구일 때 그는 매우 명료하고 맑은 머리로 자살 여행을 준비했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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